작성일 : 15-05-20 15:36
단군의 어머니가 된 곰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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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자세히 보기] 단군의 어머니가 된 곰 |작성자 손기원



한국인의 정서와 삶의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한 문헌은 <단군신화>다.


오늘은 밝은 임금, 단군의 어머니가 된 곰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삼국유사》는 야사고, 《삼국사기》가 정사다?



70년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이런 말이 교사의 입에서 나왔다. ‘야사’는 야한 사진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삼국유사》에 야한 사진이 나올 리 없다. ‘야사野史’는 지어낸 역사 이야기로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사’는 ‘정사正史’, 즉 ‘바른 역사’라는 뜻이다.



 

▲ 삼국유사 - 1904년 간행


하지만 이것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군자와 선비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를 기반으로 사상을 전개했다. 단군신화의 이해는 필수적이었다. 역사를 통틀어 우리의 사상과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헌이 바로 단군신화이기 때문이다.



▲ 삼국유사 저자 일연선사 (좀 더 잘 찍힌 것이라 한 번 더 올립니다.)



그렇다면 단군신화가 우리의 의식세계와 정신문화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자.




사람은 하늘이다


단군신화의 첫 등장인물은 환웅이다. 우리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환웅은 ‘환국’에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환인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도 일제에 의해 왜곡된 사실이다. 《제왕운기》에 환인桓因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의 판본에는 모두 ‘환국桓國’으로 되어 있다. 환국은 ‘하늘나라’ 또는 ‘하느님’을 뜻한다.

환웅은 하늘나라에서 왔으니 ‘하늘사람Heavenly People’이다. 단군은 그의 아들이며, 우리도 그의 후손이다. 아버지가 하늘사람이니 아들도 하늘사람이며, 우리 한국인 모두가 하늘사람이다.



이것이 우리의 뿌리 깊은 ‘천인일체’ 사상이다.


한국인에게 사람은 곧 하늘이다. 21세기인 지금도 다를 바 없는 사실이다.

하늘은 무엇일까? 하늘의 ‘하’는 크다는 뜻이다. 그냥 큰 것이 아니라 ‘무한히 크다’는 뜻이다. ‘늘’은 항상, 언제나, 이런 뜻이다. 사람에게도 하늘처럼 무한히 크고 항상 존재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본심’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사람의 본마음도 하늘과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은 진리를 추구하기 좋아하며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데 그것은 조상님들의 하늘 지향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늘 = 하(크다, 무한하다) + 늘(항상, 언제나)


하늘은 무엇보다 높다. 사람도 그 무엇보다 귀한 존재이다. 하늘이 평등하듯이 사람도 누구나 평등한 존재다. 하늘이 영원하듯이 사람도 영원하다. 이것이 한국인의 사상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명제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 답을 ‘하늘’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하는 철학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의 독특한 사상이다.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은 병적으로 큰 것을 좋아한다. 집도 큰 것을 좋아하고, 차도 크고 비쌀수록 좋아한다. 한국인의 허영심은 천인일체 사상이 초래한 단점에 해당한다.


한국인은 지나친 물질주의의 팽배로 하늘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참을 수 없다. 그래서 화병火病이 난다. 한국인은 ‘노하는angry’ 수준을 넘어서 ‘화fire’를 낸다. 불이 나는 것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열을 잘 받고, 심하면 폭발한다.
한국인은 자신을 지나치게 과시하거나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종종 돈이 가득 든 사과 박스를 뇌물로 주고받는 일도 벌어진다. 이러한 과시욕이나 군림의 욕구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이 또한 한국인의 ‘하늘 지향성’과 관련이 있다. 이를 ‘하늘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호칭에서도 나타난다. 비즈니스를 잘 하려면 ‘선생님’ ‘사모님’ ‘사장님’ 이런 호칭을 사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최소한 ‘고객님’이라는 용어는 사용해줘야 당연한 분위기이다. 한국인은 하늘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낀다. 그래서 열을 잘 받고 심하면 화병까지 나는 것이다.


한국인의 ‘하늘주의’는 원래 매우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사람은 하늘과 같이 고귀한 존재이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면에 위와 같은 폐해도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이처럼 양방향으로 극단적인 특성extremeness을 갖고 있다.
한국인에게 엄청난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 이것은 한국인의 ‘하늘 지향성’과 관련이 있다. 바로 단군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라


환웅이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홍익인간’을 실현할 최적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의 삶의 방식은 경쟁이 아니라 홍익인간이고 상생이었다. 두레, 대동놀이, 품앗이 같은 문화전통도 홍익인간의 원리를 담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우리’라는 말이 입에 익었다.


“우리 집에 놀러와. 우리 엄마가 너 보고 싶대. 오면 맛있는 것 만들어 주신대.”
서양 아이들은 “내 집에 놀러 와Come over my home”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외동딸, 외동아들도 자기 엄마를 ‘우리 엄마’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 나라, 우리 동네, 우리 집이라고 하지 내 나라, 내 동네, 내 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이라는 말을 쓸 정도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서로 남이 아니라는 뜻이 은연중에 들어있다.
지하철에서 누가 실족하여 선로에 떨어지면 바로 뛰어 내려가 생명을 구하는 것도 한국인이다. 그가 누구든 아무 상관 없다. 마치 사랑하는 가족이 위기에 처한 것처럼 그냥 자동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열차가 다가오는데도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우리는 서로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지하철에서 실족하는 사람이 있느면 누가 뛰어들까?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지하철에서 누가 떨어지면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다. 남의 목숨보다 내 안위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가 일본 지하철에서 위기에 빠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희생을 당한 일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수현 씨를 영웅이라 부른다.


한국인은 이렇듯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이것을 ‘우리주의we-ism’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난다. 몇 년 전 쓰나미와 함께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인들이 편의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신기한 일은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새댁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그 줄 가운데 얌전히 서 있는 점이다. 일본인은 서로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질서와 규칙을 중시한다.


한국인이라면 갓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을 것이다. 누구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규칙이나 질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우리주의’는 다름 아닌 홍익인간 사상이다. 지금 교육이념도 마찬가지로 ‘홍익인간’이다. 서구식 경쟁교육에 휘말려 그 정신이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인의 의식과 정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먼저 사람이 되라


한국인들도 부와 명예와 지위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 TV에 나와도 그가 사람답지 않으면 외면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한국인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사람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가 하는 것이다.
사람다움의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일까? 마음이 하늘처럼 넓어야지 밴댕이 속처럼 좁은 사람은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 자기만 생각하고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대접을 받기 어렵다.


속이 좁고 욕심 많은 사람은 심지어 “개, 돼지 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기까지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개나 돼지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인데,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는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바로 단군신화가 그 출발점이다.



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환웅 앞에 나타나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훔치고, 속이고, 서로 해치며 짐승처럼 살던 사람이 사람다움을 회복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환웅이 제시한 방법을 그대로 따른 곰은 여자의 몸을 얻게 되었고, 단군의 어머니가 된다.

(이상, 손기원, <고전에서 명상을 만나다>에서 옮김)



밝고 따뜻한 한국인의 마음

 

한국인의 마음을 한 마디로 말하면 밝고 따뜻한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밝은 마음은 순수하고 지혜로운 마음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국, 환인의 환(桓)이라는 글자는 '환하다'는 뜻을 중의법으로 담고 있다. 환국은 밝은 나라이며, 환웅은 마음이 밝은 남자인 것이다. 단군의 단(檀)은 '박달나무'를 뜻하는데, '밝음'과 '깨달음'을 줄여서 박달이 된다. 이 또한 중의법이다. 단군은 ‘밝은 임금’인 것이다.


박달 = 밝음 + 깨달음


아래에 사람이 되는 과정이 정리되어 있는데, 그 중 동굴에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 것은 마음을 밝혀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인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밝은 마음, 본심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밝은 마음을 회복하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곧 홍익인간의 마음이다. 마음이 밝고 따뜻한 사람이 사람이며, 마음이 어둡고 차가운 사람은 짐승이거나 짐승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고전에서 명상을 만나다>의 내용을 보자.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 속에 틀어박힌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곰은 결국 사람이 되는 데 성공하지만 호랑이는 실패한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그 시절, 그에게 금단증상이 나타났다면 참을 수 없는 니코틴의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매너 있는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흡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금연 동굴을 잠시 벗어나 딱 한 대만 피고 돌아오려 했던 것이 그만 햇빛을 보는 바람에 실패한 것은 아닐까?



단군신화의 하이라이트


단군신화의 핵심사상은 ‘하늘주의’와 ‘우리주의’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이 세 가지이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세 번째, ‘그런 사람이 되는’ 과정이다. 곰이 사람 되는 과정인 것이다.
단군신화의 전반부는 하늘나라의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상세계를 실천하고자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삶을 살도록 교화한다. 전체 스토리를 기승전결로 나눈다면 아마 여기까지가 ‘기’와 ‘승’이 될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 즉 극적인 전환인 ‘전’에 해당한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 살고 있으면서, 환웅 신에게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며 늘 소원했다. 그러자 환웅이 신비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뿌리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았다. 그것을 먹으며 21일 동안 금기를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고, 호랑이는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평범한 사람이 하늘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거기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어 한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퇴계 선생과 맹자는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의 하이라이트, 곰이 사람 되는 과정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자.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당시 하늘사람은 네 사람뿐이었다. 환웅천왕 자신과 환웅이 거느리고 온 풍백, 우사, 운사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때까지 땅에는 무지한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만 존재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갈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곰과 호랑이는 실제로 곰과 호랑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으로 화하는 과정은 대단한 은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보다 더 극적인 은유를 나는 본 적이 없다.



▲ 흙으로 만든 곰 - 부여 구아리 유적에서 발굴 (이경덕, <우리 고대로 가는 길, 삼국유사>에서)

 

곰과 호랑이는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두 부류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곰처럼 우직한 사람과 호랑이처럼 날렵한 사람을 대비시킨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우수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환웅을 닮은 하늘사람이 되겠다’는 뜻을 가졌으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 돈이나 권력을 최고로 알고 진력하는 사람은 곰과 호랑이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부류로 볼 수 있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곰이나 호랑이 부류는 삶의 의미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뜻이 비슷한 이들의 커뮤니티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들은 환웅 신에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며 소원했다. 이는 ‘하늘 같은 사람’, ‘홍익인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환웅 같은 참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뜻이다.


그런 뜻을 한 번 세웠을까? 그렇지 않다. 계속 기도했다. 원문에는 ‘상기우신웅常祈于神雄’이라고 나온다. 환웅 신에게 계속 기도했다는 뜻이다. 이는 강렬한 뜻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간절히 원하지 않는 것은 이룰 수 없다. 지극한 마음으로 원할 때 비로소 길이 열리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은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원문에는 ‘원화위인願化爲人’이라 되어 있다. ‘원’은 소원한다는 뜻이고, ‘화’는 질적인 변화를 뜻한다. ‘위인’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내용인즉, ‘사람이 되는 질적인 변화를 소원한다’는 뜻이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


환웅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되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어떤 길이 제시되었을까?
환웅은 신비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뿌리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신비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뿌리를 준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바로 금욕과 절제를 뜻한다.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 하늘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사람이 되는 것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이라는 부분이 어느 대목보다 중요하다.


‘불견일광백일不見日光百日!’ 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여기에 사람이 되는 방법의 핵심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하는 ‘집중 명상법’을 의미한다.


왜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을까? 햇빛을 보면 마음을 집중할 수 없다. 우리가 명상을 할 때 눈을 감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햇빛을 보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밖에 두지 말고 내면을 성찰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간을 해야 변화를 체험할 수 있을까? 정답은 ‘100일’이다. 그래서 ‘백일정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100일은 사람이 변화를 체득하는데 필요한 임계기간이다.


그래서 곰은 얼마 만에 사람이 되었는가? 실제로 곰이 사람이 되는 데 걸린 기간은 100일이 아니라 21일이다. 원문에는 ‘삼칠일’이라고 나온다.


조기졸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최소 21일은 걸린다는 의미이다. 24시간 일념으로 집중하여 명상을 하면 21일 만에 하늘 같은 사람이 되는 극적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변화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일념 집중의 명상법을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 결과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에는 이처럼 놀라운 은유가 촘촘히 숨겨져 있다.


21일 동안 금기를 지키며 ‘불견일광’한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사람이 되는 데 실패했다. 그 이유가 정말 담배 때문이었을까? 

 
곰은 우직하고 호랑이는 날렵하다.

곰과 호랑이의 성패가 갈린 것은 우직한 쪽이 날렵한 쪽보다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인은 똑똑하고 날렵한 사람보다 좀 모자란 듯해도 우직한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똑똑하고 날렵한 사람은 잔꾀를 부리기 십상이지만 우직한 사람은 믿음직한 것이다.


20세기 산업화시대에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대접받았지만 요즘은 인성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악의 상황은 똑똑하면서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크게 해먹기 때문이다. 회사를 망치거나 국가의 명예를 해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부류들이다.


5천년 동안 이어진 스토리


곰은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여자의 몸을 얻었다. 하늘 같은 사람, 홍익인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원문에서는 ‘웅득여신熊得女身’이라 하였다. 여자가 된 곰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웅녀는 혼인할 짝이 없었기에 매일 신단수 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면서 빌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사람이 되는 변화를 체험하는 것으로 명상이나 기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수양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사람은 자손을 생산하여 대를 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홍익인간은 사랑이다. 사랑의 세상을 만드는데 2세를 낳는 것은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그 기도에 감화한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바뀌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여기에도 중요한 은유와 역사적 사실이 숨어있다.


환웅과 웅녀가 혼인하는 것은 ‘사람인 웅녀가 하늘인 환웅과 합일이 되었다’는 은유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첫 번째 리더가 단군왕검이라는 역사적 선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단군의 ‘단檀’은 박달나무를 뜻하며, 발음이 ‘밝다’와 비슷하여 중의법으로 쓰였고, 단군은 밝은 인금인 것이다. 환국·환웅도 각각 환한 나라, 환한 남자이다. ‘밝음’ ‘환함’은 모두 마음이 하늘처럼 밝고 환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인의 ‘밝음’ 사상은 이렇게 시작된다.


밝음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말할 나위 없이 명상인 것이다.


이제 단군신화 스토리의 핵심을 정리해 보자. 사람은 원래 ‘하늘’이며,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방법이 ‘집중 명상법’이라는 점, 명상으로 변화를 체득하는 데는 100일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며 조기졸업도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변화 이후에도 자기 수양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5천년 명상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중에 유·불·도의 명상법을 소개할 텐데, 그 중 유학, 그 중 한국 유학의 명상법은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 되는 과정과 프로세스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알고 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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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쑥과 마늘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이 글에 대한 소감은 물론 쑥과 마늘에 대해 댓글을 달아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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