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8-20 09:08
[서평기사] 오체투지
 글쓴이 : 이미라
조회 : 1,982  

22년간 매일 1000배 정진
뇌성마비 이겨낸 화가의 ‘꿈’


게재일 : 2004-7-28
현대불교신문(서평기사)



뇌성마비라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나 다섯 살까지 걷지도 못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말은 입안에서 맴돌고 사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허우적거리며 걸어야 했던 아이는 끊임없이 동네 꼬마들의 놀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고열과 심한 경련에 시달리게 됐고 병원에서는 부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죽어가는 딸아이를 데리고 해인사 백련암으로 향한다.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이틀 밤낮에 걸쳐 3천배를 마친 아이에게 스님은 화선지에 원 하나를 그려 건네준다. “네 몸을 건사하려거든 매일 천 배를 하라”는 말과 함께.
그때부터 ‘무너지듯 앉아서 머리가 바닥에 닿으면 일배(一拜)’인 절을 22년 동안 매일같이 천배 씩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동양화가 한경혜(29) 씨다. 한 씨가 최근 펴낸 <오체투지>는 그의 힘겨운 성장기록이자 ‘절 체험기’다.

어린 시절, 몸이 성치 않다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의 돌 세례를 받았던 기억, 끝없이 절을 하며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죽을 듯이 절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끝없는 회의와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참아야 했던 기억들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동생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하던 한 씨는 절을 시작한 뒤로 증세가 조금씩 호전되어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게 됐다. 또한 화가의 꿈을 키워 온 한 씨는 뒤늦게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그림을 배웠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2번의 특선과 5번의 입선을 하며 주목을 받았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한 한 씨는 또 다른 ‘고행’을 자처한다. 매일 만배를 하는 백일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하루 4시간만 자며 17시간씩 절을 해야 하는 수행이었다.
“절 수행의 극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만 배 백일기도를 하면 육체적 정신적 껍질이 번데기처럼 벗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짜를 헤아리지 않기 위해 달력도 떼어 버린 후 오직 절에만 집중했다. 몸은 매를 맞는 듯한 통증과 온몸을 뒤덮은 땀띠에 시달리며 백일기도를 마친 후 한 씨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후 일반인도 하기 힘들다는 히말라야 등정과 두 번에 걸친 만배기도를 통해 그는 점차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한 씨는 요즘 경남 진영에서 ‘작가의 집’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그는 “나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저는 절을 통해 희망을 보았습니다. 절은 나를 낮추기도 하지만 저를 우뚝 서게도 만들어준 지혜이며 자유였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장애를 안고 있는 많은 이들이 저의 ‘절 체험기’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여수령 기자 snoopy@buddhapia.com